어젯밤에 99세의 재일교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 이라는 단어
어르신들의 죽음을 옆에서 반복적으로 겪었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 인가보다.
당황스럽고, 허망하다.
언젠가 돌아가실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황스러운 기분은 나의 온 몸을 감싼다다.
남동생의 편지
‘누님 보고 싶어요.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누님을 자주 볼 수가 없어서 너무 슬픕니다.
항상 예수님 믿고, 항상 건강하게 지내고 계세요.
누님을 다시 보게 될 날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 영산포 에서 동생 00 보냄.
할머니의 남동생의 편지는 곱게 액자에 넣어 할머니의 침대 맡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바래고 바랜 이 편지는 아마도 40년은 더 지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남동생의 사진이 굉장히 젊은 모습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미 먼저 돌아가신 모양이다.
이제 할머니는 사랑하는 동생을 만나러 하늘로 가셨을까?
며칠 전만 해도 나와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가 이젠 그저 호흡이 없는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계신다.
이 얼마나 허무한가.
할머니의 소망인 사랑하는 남동생을 하늘에서 만나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다면,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죽음.
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
이 얼마나 허무하고 아름다운 이별인가.
부디,
허무보다 아름다움의 무게가 더 크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