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

일본의 노인복지시설 이며 개호시설에서 만난 재일교포 김순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김순자 할머니는 개호시설에서 생활하고 계시지만, 식사를 거부하시는 경우가 대부분 이십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저에게 개호시설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글에 묘사되는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 등의 정보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당사자를 추측하지 못하도록, 관련된 실제 정보를 가상의 정보로 변경 하였습니다.)

김순자 할머니와의 만남

김순자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약 5년 전이다. 돌이켜 보면 적지 않은 기간이다.

일본의 개호시설인 이 곳에 근무하기 시작하며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업무는 ‘주간 데이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는 일이었다. 집까지 모시고 가서 침대에 누우시고 텔레비전을 틀어 드린 후, 저녁식사를 침대 옆에 마련하는 것 까지가 내가 맡은 업무 였다.

처음 할머니를 만나서 한국어로 인사를 할 때, 굉장히 반가워 하셨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니, 한국사람이에요? 저는 강원도에서 왔는데 어디서 왔어요?” 라며 할머니가 나를 보며 반가워 하셨다.

그 후로, 약 2년 동안 할머니 댁으로 아침과 저녁에 방문하여 모시러 가거나 모셔다 드렸다. 할머니는 일본의 작은 시영 아파트에서 혼자 단촐하게 홀로 생활하시는 분 이셨다. 일본에도 한국처럼 저소득층을 위한 시영 아파트가 있다.

레비소체형 치매와 치매로 인한 기억장애가 있으신 할머니는 매일 나에게 이름을 물어 보셨다. 한달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그리고 어제도 매번 나에게 이름을 물어 보셨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 때에는, 댁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에게 노래를 불러드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치매가 시작되면 기분이 요동을 치는 것 같다. 분명 10분 전에는 환하게 웃으시며 악수도 하고 미소를 지으셨지만, 얼마 뒤에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나를 보며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시기도 하신다.

나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같은 상황이 수 백번 반복이 되니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기억장애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 보면 기억장애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나의 얼굴은 알아 보셨지만,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실 때도 있지만 못 알아보실 때도 있다.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말이다.

할머니는 2년 전에 갑작스런 폐렴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노인에게는 모든 병이 치명적이다. 뭐 하나 가볍게 여길 질병이 노인에게는 없다.

갑자기 폐렴 이라니? 왜?

할머니는 구급차를 이용하여 가까운 병원에 입원 하셨고, 나를 비롯한 우리 직원들은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시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할머니는 3개월 뒤에 퇴원하셔서 내가 근무하는 개호시설로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왠지 혈색이 좋아지신 모습이었다. 그러나 3개월간의 입원으로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하셨고 이동 중에는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했다.

아침 저녁으로 집과 시설을 왕복 하셨지만, 이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신 상태가 되어 시설에서 24시간 지내는 것으로 결정 되었다.

할머니는 저녁이 되면 습관처럼 집으로 가야 된다고 하며 직원들에게 화를 내었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할머니는 집으로 가실 수 없었다.

기억 장애가 있으신 할머니는 “아들이 나를 데리러 오면 꼭 말해줘~” 라며 나에게 매번 부탁을 하셨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참고로 할머니의 아들은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인 가족 관계 까지 개인 정보는 내가 근무하는 개호시설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가 “아들이 찾아오면 나에게 말해줘” 라는 한국어를 말하시니 추측할 뿐이었다.

실제로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할머니를 찾아 온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할머니가 숨어있는 것도 아니고,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만나러 오려고 하면 당장 내일 이라도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런 것이다. 정확히 알수 없지만, 그저 그렇게 씁쓸한 상황인 것이다.

식사거부

할머니는 기억장애로 인하여 최근의 것들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신다.

10분 전의 일도 기억 못하시고, 오늘 식사를 하신 사실도 전혀 기억을 못하신다. 매끼니 매번 할머니에게 식사를 권할 때마다, 밥을 먹었다고 말하며 식사를 거부하신다.

“아니, 왜 자꾸 밥을 먹으라고 하는 거여~! 밥을 먹었는데 왜 자꾸 먹이려고 하는 거여?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여?” 라며 화를 내시는 일이 반복 되었다.

그럴 경우마다, 한 숟갈만 드시기를 권하고 또 권하고 또 권하여 식사를 하시도록 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매번 거부하시는 할머니를 위해서 내가 직접 한국식으로 불고기를 만들었다.

매번 입맛에 맞지도 않아 보이는 일본식 식단으로 식사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왠지 안타깝기도 하고, 혹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면 예전 처럼 식사를 하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책임자와 나누고, 한국식단으로 저녁 식사를 내가 만들겠다고 하고 불고기와 한국식 된장 찌게 등을 포함한 반찬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밥상

열심히 한국식 식단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한 후에 휠체어에 타신 할머니를 식탁으로 모시고 와서 식사를 권했다.

하지만 여전히 식사를 거부하셨다.

메뉴가 문제가 아니었구나…

식사를 계속 권하는 나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뭔가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며 거부하셨다.

이번에는 화를 내는 표정이 아닌, 곤란한 표정 이셨다.

할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저기요~ 나는요~ 여기서 밥을 먹으면 안되요~” 라고 하시더니 말씀을 이어가셨다.

“집에 가야 되요. 왜냐하면요~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니가요 아마도 지금 나를 위해서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항상 밥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이상 식사를 권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내가요. 여기서 저녁 밥을 먹으면요. 우리 어머니가요 슬퍼하셔요. 나랑 같이 밥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나 혼자 밥을 먹어버리면 나도 곤란하고, 우리 어머니도 곤란해요. 미안해요. 나는 여기서 밥을 먹을 수 없어요”

나는 더 이상 식사를 권하지 못하게 되어 버릴 정도로 슬픈 감정이 올라와 버렸다.

당신의 어머니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구나…

본인의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니의 상황.

게다가 치매로 인해 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어머니의 기억 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슬펐다.

아마도 할머니의 젊은 시절, 저녁에 밖에서 돌아오는 본인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밥상’ 에 관한 기억은 노화로 인한 뇌 기능의 쇠퇴도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닐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어머니의 밥상’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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