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호복지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는 모두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인가?

일본의 개호복지사 그라고 한국의 사회복지사, 노인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등 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선하고 착한 사람들인가? 과연 그럴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착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국의 복지시설에서 근무를 했을 때, 이용자의 가족들과 이용자 들로부터 ‘착한 일 하시네요’ 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일본의 노인 요양 시설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용자 노인들로부터 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나에게 반문한다. ‘나는 착한가?’

글쎄다.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착한 사람 혹은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인가? 하면 딱히 그렇다 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누가 본인을 나쁜 사람이라고 소개 하겠는가.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저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 그리고 노인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이 기준에 ‘착함’ 이라는 기준이 왜 대입 되는가? 어찌 보면 전혀 관계 없는 기준이다.

물론 그들이 왜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들이 돌보지 못하는 치매노인과 장애인 등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으니 ‘사회적인 입장’에서 고마운 마음이 한켠에 있는 것일 것이다.

또한 자녀들도 지속적인 온화한 감정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치매노인을,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들이 대신 돌보고 있으니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일 것이다.

시설의 노인들 입장에서는, 당신의 자녀들도 하기 힘들어 하는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으니 착하다고 표현한다는 것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나는 그에 상응하는 월급을 받고 있는 직장인이다. 버젓이 사회적으로 정해진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데 ‘착하다’는 칭찬은 왠지 불편한 감정까지 생긴다.

실제로 나는 월급을 전혀 받지 못한다면, 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내 삶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직업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렇다.


오히려 나는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들 보다, 사실 자원봉사를 위해 복지 시설과 노인 시설을 찾아 오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착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댓가가 없이 봉사를 위해 오시는 분들 아닌가? 그런 분들이야 말로 칭찬받아 마땅하며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착하다는 기준은 매우 개인적이며 상대적이다. 본인에게 친절하게 잘 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 기준으로는 착한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담당하고 있는 노인분들이 나에게 착하다는 표현을 하면, 농담을 섞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는 일 하는 만큼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일 하고 있습니다. 착한 것이 아니고 그냥 내 할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상대방 노인분들은 웃으면서 다시 대답한다.

“호호호, 그래도 착한건 착한거지.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왠지 마음이 편하네”

그런 대화를 나눌 때면, 서로 웃고 넘어가기는 하지만, 이 직장에서 나는 ‘착하고 선함’의 기준은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노동에 대한 댓가를 받고 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기준으로는, 자원봉사를 위해 방문하는 자원봉사자가 착하고 선한 사람이다. 바라는 댓가가 없지 않은가? 그 분들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다. 최소한 나는 아니다.

실제로 착함과 거리가 먼 사회복지사 혹은 요양보호사 그리고 일본에서는 개호복지사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착한 것은 둘째 치고, 진짜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천지에 널려 있으며, 객관적으로 악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일본 노인개호시설에서 일어난 개호복지사의 흉기 난동 사건

몇 년 전의 일이다. 일본의 개호시설의 한 남자 직원이 다른 직원과 치매 노인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있었다. 그 개호시설을 이용하던 몇몇 노인들과 직원 여러명이 다쳤다.

이 사건 이후, 그 직원은 당연히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 되었다. 범행의 원인은 무엇 황당 하리만큼 단순 했다. ‘개호시설에서 근무 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많았다’ 가 그 범행동기 였다.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개호시설에서의 근무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렇다고 이 사건 속의 개호직원의 행동을 모두 이해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죗값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한 언론사 기자는, 해당 직원을 잘 알고 있는 주변 인물을 인터뷰 했다. 그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 범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말수가 적었으며 착한 사람이었다’

그 범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판은 ‘착한 사람’ 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이제 와서 그 누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일반적인 상식의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착한 사람’은 아니다.

일본 노인 개호시설의 ‘간호사’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이 케이스도 일본의 케이스이다.

일본의 노인 개호시설에서 근무하던 여자 간호사가 어느 날 갑자기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의 발표는 다음과 같았다.

해당 노인 개호시설에서 최근 몇 년간 있었던 노인들의 사망사건이 그 간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이 조사결과 밝혀졌다는 내용 이었다.

해당 노인 개호시설에서 최근 몇 년간 자연사로 사망한 줄 알았던 노인들 20여 명의 자연사가 평범한 자연사가 아니었다. 자연사가 아닌 타살로 조사 결과 밝혀진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범인은 그 개호시설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였다. 범행 동기는 ‘야간 근무 때, 노인들 돌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였다. 정말 할말이 없을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노인들에게 그들의 신체로 감당할 수 없는 약물을 과다투여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독약을 투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노인들이 사망하는 직간접적인 이유가 되었던 되었던 것이다.

텔레비젼 뉴스를 보고 있던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던 기억이 있다. 사회복지 시설이나 노인 요양원 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예쁘고 사랑스럽고 착하게만 보이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어처구니 없었던 사회복지 시설 대표들 그리고 사회복지사들

위의 경우는 일본의 케이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다를까?

이어서 소개하는 케이스는 모두 개인적으로 직접 겪었던 일들이다. [사회복지사가 선하고 착한 사람 들이다] 라는 명제가 맞다면,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시설 대표들은 더 착한 사람들이다] 라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사회복지사를 채용하고 있는 경험 있는 사회복지사 선배 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Case 1 – 시골 노인 요양원 원장의 난방비

아주아주 오래 전의 경험이지만, 한국의 시골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해당 요양원의 원장은 지자체에서 지원받는 ‘난방비’ 용도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요양원 난방비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집의 난방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시골 이었던 그 동네는 보통 기름(등유)보일러로 난방을 하는 곳이 많았다. 겨울이 되면 난방비 용도로 등유 구입 비용을 해당 지자체로부터 받았다.

겨울이 되면 등유를 공급하기 위한 차량은 시설로 방문하였으나, 요양원이 아닌 요양원 옆에 있는 원장의 자택으로 가서 보일러에 기름을 공급했다.

요양원의 난방시설은 등유가 필요 없었다. 전기를 사용한 난방시스템을 이용하는 시설이었다.

당연히 그리고 회계처리는 요양원 난방비로 사용한 것으로 처리했다.

공금횡령이다.



사실 금액은 얼마 되지 않았다. 뉴스에서 공금횡령 이라는 단어에 뒤따라 나오는 수천만원 수억원 규모의 금액은 아니었다. 한달에 50만원 정도였다.

차라리 엄청난 금액을 횡령 하는 상황이라면, 어디가서 신고라도 하고, 하다못해 뒤에서 욕이라도 시원하게 하겠지만 금액이 너무 애매하다.

그러나 내 기준으로 볼 때, 횡령은 횡령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기준이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횡령은 횡령이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의 대사처럼 ‘모래든 바위든 물 속에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다’. 50만원이 500만원이 될 가능성이 있고, 나중에 5천 혹은 5억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외딴 시골에서 최선을 다해 노인들을 모시고 있는 선하고 착한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사람이 달라보였다.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당신도 특별히 착하다고 할 것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그 대표를 볼 때마다 했다.

역시 나중에 요양원 서류 정리를 내가 직접 정리 하다가, 그 외에도 여러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들이 발견했다.

실제 그 요양원 현황과 다른 건강보험공단 청구현황 및 청구비용 신청 기록, 의심스러운 소방공사 수의계약 절차,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기부금 사용처, 실제 구입내역과 다른 식자재 비용 등, 아마추어인 내 눈에도 여러가지가 보였다.

이런 것들은 50만원으로 끝나지 않는 금액 들이다. 역시 그러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노인 요양 혹은 복지와 관련된 정부 지원금 중에는 ‘눈 먼 돈’이 너무 많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눈 먼 돈’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호주머니에 넣어서는 안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법이 아닌 방법을 사용하여 그 ‘눈 먼 돈’ 을 취하는 것을 우리는 ‘횡령’이라고 한다.

착하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상범위를 넘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받는다.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면서 이 ‘횡령’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시설 대표를 만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금액은 항상 애매(?)했다. 문제 삼기에 애매한 크기의 금액이라는 뜻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회복지사 라면, 나중에 당신이 관리자 급이 되거나 시설 대표가 된다면 돈에 관해 깨끗하기 바란다. 이건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사회적 상식이다.

당신이 이미 관리자 혹은 대표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직원들을 조심하기 바란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단지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 뿐이다. 당신의 과거를 돌아보시라. 당신이 직원 이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Case 2 – 또 다른 시골 요양원의 ‘숙식제공 조건을 건 채용공고’

다른 시골에 있던 요양원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위의 case 1의 요양원과 다른 요양원의 이야기 이다.

일자리를 찾고 있던 나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근무하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고민은 거주할 곳 이었다. 딱히 좋은 집을 찾고 있던 것이 아닌, 그저 개인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 했다.

그러던 중에 한 요양원에 이력서를 보냈다. 외진 시골에 있는 요양원이라, 거주할 수 있는 개인 방을 제공한다는 조건을 건 곳이었다.

요양원이 있던 지역에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외부지역의 사람을 모집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 라는 뜻이다.

실제로 매우 외진 곳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나 요양원 중에는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기숙사를 구비하고 있는 곳이 종종 있다.

이력서를 보낸 다음날에 바로 전화가 왔다.

내가 있던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면접 이라도 보려면 꼬박 하루를 다 소비해야 했다. 처음부터 확실히 물어보고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다.

거주할 수 있는 개인 방을 직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 확실한지 물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그 다음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일할 사람이 없었던 그 요양원은 다음날 부터 바로 출근 하기를 원했다. 나를 보더니 본인 자녀와 비슷한 또래라서 그런지 본인 자식 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참고로, 나는 남에게 ‘가족 같다’라는 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당신과의 관계를 대충 생각 할 수도 있으니 이해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내 경험상 대부분 그러했다.



30분 만에 채용이 결정되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 궁금한 것 있으면 질문 하라고 하여, 내가 거주할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와야되는지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원장은 왠지 모르게 약간 머쓱해 하면서, 요양원의 다인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당신 어르신 네 분이 사용하고 있던 방이었다.

침대 4개 중에 3곳은 치매 어르신들이 사용하고 있었고, 빈 침대 하나를 가리키면서 ‘여기서 자면 되겠네요’ 라는 말을 들었다.

응?

잠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개인방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전화통화 할 때도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았던가?

물론 나는 잠 잘 곳이 필요했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치매 노인시설에 입소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 원장이라는 사람, 지금 직원을 모집하는 것인지, 요양원 입소자를 모집하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는 것인가?

이용자의 안전상 그리고 위생상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직원이 이용자들과 어울려 잠을 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하지만,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함께 잠을 잔다고 치자.

저녁 7시 혹은 8시면 되면 노인들은 취침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밤 9시가 되면 일반적으로 불을 모두 소등 한다.

새벽 5시 부터 노인들은 깨서 활동하기 시작하고 오전 6~7의 요양원은 어떤 곳이건 직원들이 거의 뛰어다니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거나 화장실을 데려가거나 목욕을 시키거나 대소변 기저귀를 교환하거나 목욕을 시키거나 정신이 하나도 없다.

보통 요양원에 입소한 치매 노인들은 배변활동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밤에 3~4차례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 그럴 때마다 직원이 들어와서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소개 받은 그 방이라고 친다면 현재 3명의 노인이 있으니 적어도 10~12번은 밤에 직원이 와서 노인을 깨우고 기저귀를 교환하는 업무를 할 것이다.

그러고 있는 동안, 바로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고 있으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다인실 자체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비용적인 측면에서 다인실을 이용하는 노인이 있겠지만, 고령자의 치매노인은 개별실을 이용하는 것이 맞다. 이건 기본적인 자존심 및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보호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먼 길을 달려 왔는데, 사람가지고 장난하는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인가? 요양원에서 한번 이라도 일을 해보기는 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한창 요양원 설립이 유행처럼 시작 되었을 때, 본인의 자산과 대출을 받아 작은 규모의 요양원을 건축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대충 어찌어찌해서 취득 했겠지.

그리고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요양원 사업을 한 번 해보려고 하는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막상 면접 때 직접 가 보니, 그 곳은 노인 요양원을 설립한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던 곳 이었다)

요양원 하나 차려 놓고 치매노인들을 입소시키면, 정부의 눈 먼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는 풍문이 한창 퍼지고 있던 시기 였으니 말이다.

그런 요양원 일지라도, 그런 요양원 원장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어딘가에 취직하여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 이었다.

그리고 잠 잘 곳만 해결이 된다면, 정말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게 요양원의 다인실 침대 한 켠은 아니었다.



나는 그 원장에게 되물었다.

“당신 회사의 구인공고를 보고 전화까지 하고 왔다. 나는 당연히 기숙사 같은 개인 방이 있는 줄 알고 왔다.

당신도 요양원 원장을 하고 있으니, 직원 숙소가 있는 요양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애초에 당신이 그런 식의 문구로 구인공고를 냈으며, 전화통화 할 때 조차도 나에게 그렇게 답변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당신은 이 침대를 면접이 모두 끝난 지금 이 곳을 보여 주며, ‘여기에서 다른 이용자 어르신과 함께 생활하고 취침 하라’ 라고 하는데, 솔직히 황당하다.

내가 이상한가? 정말 궁금하다. 내가 황당해 하는 것이 이상한가?

당신이 나와 똑같은 상황이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다.

이 상황과 똑같은 상황 이라면 기분이 어떨것 같은가?

조금 전에 내가 당신 자식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는가?

당신 자식이 이런 상황을 마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부모인 당신의 기분은 어떠할 것 같은가?

내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진짜로 대답해 주시라.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라고 말하며 요양원 원장에게 정중하지만 명확하게 물었다.



그 원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을까? 본인도 이 상황이 부끄러웠을까? 아니면, 이제 면접 보러 온 신규직원 자리에 지원하는 주제에, 오너인 자신에게 본인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황당 했을까? 아마도 그 중간 지점의 어딘가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 원장에게, “내가 들고 온 이력서를 다시 돌려 달라”고 한 뒤 받아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휴게소에 들러서 내 이력서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런 시간 낭비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회사가 직원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줄 수는 없으며,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의무도 없다. 당연히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 본인의 생활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설령 다른 지역에 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 본인이 원한다면, 스스로 집을 구하든 어쩌든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내 스스로의 능력으로 그 ‘당연한 것들’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숙식을 제공하는 직장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을 발견해서 면접을 보러 간 것이다.

요양원 침대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으면 월급 받아서 방을 구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면접 보러 가기 전날에 월세로 지낼 수 있는 방이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활을 이어 나가기에는 월급이 너무너무 적었다.

면접 때, 요양원 원장이 나에게 제시한 금액은 120만원 이었다. 물론 실수령액이 아닌, 세전 금액 이었다. 세금 및 4대 보험을 뗀다면, 실수령액은 아마 100만원 이하로 내려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그 요양원에서 근무를 하려고 했었다. 어지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로 세 달 정도나 지났을까? 그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세 달이나 지난 시점 이었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그 요양원과 그 원장은 완전히 지워져 버린 상태 였다.

‘아니, 아직도 직원을 못 구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 적어서 구하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 그러게 누군가(나)가 아무 것도 없는 그 시골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조금만 신경을 써주지 그랬나?

그 원장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노인 이용자와 따로 잘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보겠다 라는 내용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뭐가 미안한 것인 지는 인지 했고?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자식같이 여겨지기 때문에 계속 생각이 난다고 했다.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 일을 해보고 싶다 라고 했다.

뭐래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다. 아마도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지능에 문제가 있거나 머리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당신 자식 같이 여겨지는 다른 사람 알아보시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진짜 여러가지 하고 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Case 3 – 사회복지 시설의 청소 지적

사회복지 시설에 지원하여 근무를 했던 적이 있다. 장애인 그룹홈 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일은 그룹홈과 관계된 일을 모두 하는 것이었다.

진짜 시장에 가서 반찬 사오고(마트는 비싸니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 하라고 나에게 요구했었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약 정리하고, 약 먹이고, 이용자들 서류 정리하고, 또 서류 만들고, 가정 상담도 하는 것이 내가 할 업무들 이었다. 한마디로 다 했다.

그 시설의 직원은 두 명이었다. 시설 대표 그리고 나 이렇게 두 명이 전부 였다.

취업 후 첫 날은 이용자들과 인사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둘째날, 시설대표는 나에게 그룹홈 청소하는 일을 지시했다. 그리고 외부에 볼일이 있다며 외출하여 세 시간 뒤에야 돌아왔다. 그 세 시간 동안 나는 그룹홈 전체를 청소했다.

내 나름대로는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청소를 했다. 내 기준으로는 매우 깨끗하게 청소를 했으며 스스로도 만족 했었다.

시설대표는 세 시간뒤 돌아와서 청소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청소 검사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왠지 황당했다.

청소검사? 청소가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검사는, 드라마 속에 비춰지던 ‘교도소’나 ‘군대’에서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어찌되었든 청소검사는 시작되었다.

그룹홈 전체를 한참 고개를 숙여 살펴보기도 하며, 어떤 곳은 손가락으로 슥 문질러 보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반복적으로 취했다. 그 행동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한참을 확인하더니 거실 한쪽 구석에 잘 보이지도 않는 위치에서 뭔가를 집더니 나에게 가지고 왔다. 머리카락 한 올이었다. 그리고는 청소를 제대로 하라며 나에게 화를 내며 다그쳤다.

응?

여기는 청소를 잘 못하면 혼나는 곳이야?

순간, 새로운 곳에 취직되어 기뻐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리고 이 시설대표의 머리가 이상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본인은 본인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결국 그 시설에서 오래 일 하지 못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진 못했다. 시설 대표가 나에게 청소를 지적했던 그 어처구니 없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여러가지 행동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갈수록 가관인 것들이 연달아 나왔다.


Case 4 – 노인의 물 컵을 빼앗아 설거지 통에 던져 버리던 사회복지사

제법 규모가 있던 노인 요양원에서 근무 했던 때가 있었다. 그 곳은 직원들이 많아 각 층별로 리더급의 사회복지사가 있었다.

하루는 내가 식사를 준비하며 테이블에 개인 쟁반을 나열해 두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식사를 직원이 만드는 곳이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때, 치매가 있는 어르신이 거실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시며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쟁반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물 컵(플라스틱 소재)을 들어서 보시는 행동을 취하셨다.

그 때,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던 리더 사회복지사가 빠르게 걸어오더니 그 어르신 손에서 물 컵을 세차게 빼앗더니 “왜 함부로 만지고 그래!” 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그 물 컵을 들고, 내가 있던 주방으로 오더니 싱크대에 물 컵을 집어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세균이 있을지도 모르니 물 컵을 새로 설거지 하라”는 요구같은 명령을 나에게 내렸다.

그 사람을 보며 나는 진지하게 궁금 해졌다.

저 사람은, 치매걸린 어르신을 저렇게 벌레 보듯 하고 있으면서 왜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일까?


글을 마치며

문득 생각하는 주제로 글을 적었는데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그리고 개호복지사들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라는 것을 주제로 글을 적어내려가고 싶었는데 왠지 욕하고 비방하는 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런 글 흐름이 목적이 아니었는데, 결론이라도 제대로 정신차리고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사회복지 그리고 노인복지에 관련된 직종에 근무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착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들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저 복지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비방처럼 기술한 위의 사례들 속의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변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착하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상식을 벗어난 사람은 되지 말자 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국사람들은 유독 가족의 개념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가족 같은 회사’ , ‘가족 처럼 섬기겠다’ , ‘가족 처럼 모시겠다’ ,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만들겠다’ 등 가족을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를 한국 사람들은 좋아한다.

글쎄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타인은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다. 가족 처럼 여긴다? 모든 가족의 모습이 안락함 이라는 개념으로 정형화 되어 있는가?

편안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콩가루 같은 가족도 있다. 극단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많이 존재한다.

목숨 걸고 가족 구성원을 지키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남보다 못한 가족도 있다. 아니 많다.

사회복지사 개호복지사 요양보호사는 이용자를 가족 같이 생각해야 할까?

아니다. 이용자는 철저하게 남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 한다.

그러나 남 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친절해야 한다. 철저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내 가족처럼 적당히 그리고 대충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족의 또 다른 이미지 중에는 ‘대충 상대 해도 괜찮은 관계’라는 이미지 또한 있다.

내 가족에게는 적당히 해도 이해해 준다. 대충 해도 이해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남은 다른다.

반드시 예의를 지키고 정확하게 대인서비스를 실시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나는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인품이나 성격 혹은 성향이 착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짧은 교육과 긴 교육들을 받았고, 이 분야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 했던 시기 들이 있었다.

나는 사람의 삶을 지지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는 대인 서비스 전문가이다. 착하고 선량한 것이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나는 착한 사람인가? 더 착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올바른 고민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이용자 혹은 어르신이 현재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다면, 그 방법은 찾아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맞다.

나는 나를 ‘대인 서비스 전문가’ 라고 소개하기 부끄러움 없는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착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닌, ‘대인 서비스의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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