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위가 어두워진 저녁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이 되면 우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은 마치 본능 과도 같다. 이는 ‘귀소본능’ 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귀소본능
귀소본능 이라는 단어는 흔히 동물의 행동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한다.
사람도 동물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귀소본능’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이 되면 우리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너무 당연한 삶의 모습이기도 한 이 욕구는 ‘귀소본능’ 이라는 이름의 ‘본능’ 이기도 하다.
해질무렵, ‘집에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을 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은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 이기도 하다.
帰宅願望
일본의 개호시설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개호용어 중에 ‘帰宅願望’ 라는 단어가 있다.
이 일본어를 한국식 음독으로 읽는다면 ‘귀택원망’ 이라고 읽을 수 있다.
한국식 음독으로 읽으면 왠지 모르게 어색한 발음이며,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의미가 가장 비슷한 한국어 단어를 찾는다면 위 단어는 ‘귀가희망’ 정도가 될 것이다.
이는 요샛 말로 ‘귀가본능’ 이라는 말로 바꾼다면 우리들은 그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의 치매 노인을 위한 ‘개호시설’ 에서 아주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기본적으로 개호시설에서 생활하는 치매 노인 중에서,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겠다’ 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나는 분들이 있다. (여기에서 생활이라는 것은, 개호시설에서 24시간 생활한다는 의미이다)
고령자의 치매노인들에게 보이는 이 ‘帰宅願望’ 의 증상은, 주로 저녁시간에 발현되는 치매 증상의 하나로 간주한다.
단순히 ‘집에 가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넘어,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개호시설의 거실 혹은 복도를 배회 하거나, 본인의 방과 거실을 왕복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략 위와 같은 증상이 발현된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굳이 치매 증상이라고 구분 짓지 않아도,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당연한 본능이다.
치매 노인들은 본인이 있는 장소를 명확하게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개호시설(요양원)에 있는 본인의 현 상황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스즈키 할머니의 귀소본능
내가 근무하고 있는 개호시설의 ‘스즈키’ 할머니는 저녁 5시 정도가 되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된다.
바로 ‘귀소본능’ 이 발현되는 것이다.
스즈키 할머니는 일주일 중 4일 개호시설(요양원)에서 지내시는 분이시다.
이 분은 저녁시간이 되면, 30분에 한 번씩 나에게 와서 “집으로 돌아가겠다” 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나는 그 때마다 “할머니 집에 가시는 날은 오늘이 아니에요. 월요일에 집에 가시는 거예요” 라는 대답을 드린다.
“그래? 그렇구나. 알겠어” 라는 대답을 할머니는 일단 하신다.
그러나 할머니는 5분 후면, 모두 잊어 버리시고 다시 나에게 오셔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반복 하신다.
그리고 동일한 나의 대답은 반복된다.
이는 할머니가 취침에 들어가실 때까지 계속 된다.
아니, 취침에 들어가신 후에도 3~4번은 잠에서 깨어나셔서 나에게 오셔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신다.
그렇게 아침이 찾아오고 밤이 지나면, 안정을 되찾으신다.
가족의 희망과 할머니의 희망 사이의 거리
스즈키 할머니의 가족들은 이미 지쳐있는 상태이다.
스즈키 할머니의 ‘치매증상’ 을 더이상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한 이유로 스즈키 할머니는 일주일 중 4일은 요양원에서 지내시고, 3일은 댁에서 지내신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할머니의 ‘귀소본능’ 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가끔은 할머니의 의사와 반하여 ‘속박’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죄책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할머니의 의사와 가족들의 번아웃(burn out) 사이에서 개호시설은 가장 최선의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일주일을 대략 절반으로 나누어 개호시설과 가정에서 분담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스즈키 할머니의 희망 vs 가족의 희망
사실 가족들은, 스즈키 할머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계속 요양원에서 지내시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저녁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 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위와 같은 스케줄을 결정한 것이다.
가족 중에 치매 노인이 있다면, 위 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개호시설 직원들도 가족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중증의 치매 노인을 집에서 24시간 개호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갓난아기를 24시간 보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중증 치매노인의 상태이다.
집에 돌아가기를 항상 원하는 스즈키 할머니와, 집에 돌아오지 않기를 항상 원하는 가족들.
그러한 씁쓸한 상황에서 가급적 중도의 방법을 우리는 항상 모색한다.
오늘 저녁도 여전히 “나, 집에 돌아가고 싶어” 라고 나에게 호소 하시는 스즈키 할머니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서글픈 감정이 올라온다.